2008년 08월 07일
[코지토]좌파의 매트릭스 Ⅰ읽기

+ 좌파의 매트릭스 1 읽기
영화-텍스트
+ 좌파의 매트릭스 1 읽기
- 혹은 좌파의 시각에 실존주의 시각을 짬뽕한 후 정신분석을 살짝 가미한 매트릭스 파트 1 감상법
1. 우리 앞에 놓인 현실
지난 포스팅인 [자본주의라는 질병]에 달린 여러 가지 리플을 읽으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그중 어떤 님의 리플은 ‘참 좋은 말이다, 그런데 그건 말일 뿐 현실과는 다르다’ 정도로 요약될 수 있을 것 같다. 아마 많은 분들이 이분과 같은 생각을 할 것 같다.
그런데 난 좀 다르게 생각한다. 우리가 ‘현실’ 이라고 부르는 것을 먼저 한번 살펴보자. 도대체 뭐가 현실인가? 아마도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돈이 있어야 입고 먹고 잘 수 있지 았나? 돈 없으면 죽잖아? 그게 현실인 걸 부정할거야?
결코 부정할 생각 없다. 나 역시 돈 너무 많이 좋아한다. 누가 내게 돈 주면 고맙고 기쁘다. 월급 한 푼이라도 인상되면 춤이라도 추고 싶다. 그러나 좀 더 솔직히 파고들어가 보자. 위의 문장에 나오는 ‘현실’이라는 놈이 저런 현실을 말하는 것인가?
결국은 이런 거 아닐까?
[난 좋은 직업(=돈많이 버는 직업) 구하고 싶다, 좋은 차 타고 싶다, 좋은 아파트 사서 살고 싶다, 예쁜 와이프 얻고 싶다, 너도 이런 욕망에 착실하게 굴복하지 않느냐! 그래서 하기 싫은 일 하고 때로는 남을 속이기도 하고, 자본주의라는 게임에 성실하게 참여하고 있지 않느냐. 나도 니말이 참 좋다고 생각하지만 저 욕망, 저 욕망에는 당할 수 없다. 너도 마찬가지잖아. 위선 좀 떨지 말지?]
앞서 이야기 했지만 난 위선 떤 적이 없다. 돈 좋아하고 예쁜 여자 지나가면 쳐다보고 싶다. 좋은 집 있으면 좋고 이왕이면 돈 많이 주는 직업 갖고 싶다. 때로는 비굴하게 행동하기도 하고 별로 깨끗하지 않은 짓을 하며 융통성이라고 우기기도 한다.
다시 말해 깨끗할 것도 없고 그렇다고 그다지 더러울 것도 없는그냥 그런 인간이다. 결국 내가 이야기하는 것은 좋은 것은 좋은 것이지만 그 좋 것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직업선택에 있어서,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는 데 있어서, 평소 생활양식에 있어서 돈보다 우선하는 것은 있을 수 있다는 이야기 일 뿐이다.
파고들어가 보면 결국 우리가 현실이라고 부르는 것은 우리가 추구하는 ‘욕망’이다. 웬만하면 (대부분의)우리는 추위에 떨지 않을 집은 갖고 있고 굶어죽을 만큼 곤궁하지는 않다. 하지만 우리의 욕망이 추구하는 현실은 그보다 훨씬 더 거대한 것이다. 현실에 만족할 때 행복하다는 것을 알지만 언제나 욕망은 보다 더 큰 어떤 것을 요구한다. 우리의 욕망은 우리의 행복을 위해 복무하는 것이 아닌 까닭이다. 우리의 욕망은 그것을 부여한 주인을 위해 복무하고 있다. 욕망을 부여한 주체가 누구냐고? 그게 바로 우리가 ‘현실’이라고 부르는 놈 아닐까?
마르크스가 토대, 사회적 존재, 혹은 생산관계라고 불렀던 놈이 바로 그놈 말이다(그러나 마르크스 후기 저작을 보면 토대≠사회적존재라는 주장이 있다 상부구조의 일부 역시 사회적 존재로서 사회적 의식을 규정한다는 것이 마르크스의 생각인 것 같다 따라서 토대≒사회적 존재라고 이해하는 것이 적당할 듯하다 참고로 막시즘에서 토대라는 용어는 생산관계와 동의어로 사용된다 한 사회구성체가 가치를 생산하고 이를 분배하는 가운데 맺게되는 제인간관계의 체계를 막스는 생산관계라고 정의했고 이를 바탕으로 그 사회의 정치나 문화와 같은 기타 구조가 만들어지는데 이를 상부구조라 정의했다).
워쇼스키 형제는 그 놈을 아주 독특하게 [매트릭스]라고 부르는 모양이다.
2. 싸이퍼, 자본주의시대를 사는 우리들의 모습
[나는 이 스테이크가 존재하지 않는 다는 걸 알지. 이걸 입속에 넣으면 매트릭스가 내 뇌에다가 말하는 거지. 이게 아주 부드럽고 맛있다고. 9년이라는 세월을 보낸 후 내가 깨달은 것이 뭔지 알아? 모르는 것이 행복이라는 거야.]

스테이크를 눈앞에 둔 사이퍼의 모습
모피어스진영을 배반하면서 스미스한테 중얼거리는 사이퍼의 말이다. 철학용어(?)를 빌려 아주 난해(?)하게 표현해 보자면 배고픈 소크라테스보다는 배부른 돼지가 되겠다는 말이다. 이 돼지를 철학적 전문용어로 부르자면 필론의 돼지가 되겠다. 일찍이 이문열옹께서 같은 제목의 단편을 발표하시며 필론의 돼지야말로 폭력이 횡행하는 시대에 가장 올바른 처세법이라고 설파하신 적도 있으신 아주 유명한 돼지다.
자본주의라는 놈은 끊임없이 우리의 뇌에 속삭인다. 니 ‘마음의 가시’는 무시해 버려. 저 아파트, 저 자동차, 저 콘도, 저 휴대폰이 있으면 넌 행복해져. 진짜야. 니가 불행한 것은 니가 수입이 적어서야.
막시즘의 용어를 빌리자면 저건 상품의 물신화다. 상품이 본래 가지고 있는 실존적인 의미, 상품이 지니고 있는 노동력의 관계-상품안에 내재되어 있는 실존적인 가치-는 사라지고 오로지 화폐로서만, 그리고 소비자의 감각충족으로서만 존재하는 상품물신주의가 거기에 있다.
우리 대부분은 상품을 소비하면서 그것 안에 내재되어 있는 노동의 가치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는다. 나이키를 신으면서 동남아에서 저임금으로 착취당하는 노동자를 생각하지는 않는다. 적어도 약간은 상품물신화에 참여하면서 살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사이퍼는 말한다. 차라리 모르고 싶다고. 알면서 즐기기에는 마음 속의 가시가 너무 큰 모양이다. 그래서 스미스에게 부탁한다 모든 것을 잊게 해 달라고. 상품이 주는 감각적인 쾌락을 마음껏 즐기고 싶다고. 물론 그가 즐기는 모든 감각적인 촉각은 같은 인간의 생체전기(노동력)로 만들어져 있다는 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상품의 소비=행복이라는 등식을 속삭이는 자본의 외침처럼.
도대체 뭐가 행복이고 뭐가 행복이 아닌가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우리 내부에 파고들어 우리를 조정하는 환상은 집요하게 우리의 욕망을 부추길 뿐이다. 끊임없는 상품의 소비 속으로 우리를 밀어 넣는다. 삶의 의미? 그건 니가 축적하고 소비하는 화폐의 양으로 결정되지. 화폐로 환산되지 않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거야. 화폐화 할 수 없는 짓을 해대는 너는 헛짓을 하고 있는 거야. 자본은 자신의 환상을 끊임없이 속삭인다. 부모님의 목소리로, 때로는 직장 상사의 목소리로, 때로는 명절에 모인 친척들의 목소리로.
3. 자본주의, 거대한 환상의 덩어리
일찍이 붓다께서 설파하셨지만 세상이라는 것 자체가 마야(환상, 미망)이다. 그러니 세상의 구성물인 자본주의 역시 환상임은 자명한 것 아니냐. 맞는 말이다. 실제로 매트릭스는 불교적으로도 도교적으로도 심지어 소크라테스나 플라톤 식의 관점에서도 읽을 수 있는 매력덩어리 물건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막시즘의 관점에 기타 양념을 첨가하기로 했으니 좀 다르게 바라보자.
자본주의의 가장 무서운 점은 우리의 모든 활동을 ‘생산적’인 것과 ‘비생산적인 것’ 으로 나누며 철저하게 ‘비생산적인 것’을 절멸시켜 나간다는 것이다. 물론 생산적인 것은 화폐로 전환될 수 있는 활동을 의미한다. 이 과정에 모든 사회의 구성원은 자발적으로 복종하고 복무한다. 그러지 않는 인간은 이미 인간으로서 존엄을 잃어버린 것이고 퇴출되어야 할 대상이 된다. 그 인간이 고상하던지, 착하던지, 혹은 고귀하던지 등등은 고려의 대상이 아니다.
자본의 물신화에 인간이 자발적으로 복무하는 이유는 자본주의가 끊임없이 확대재생산하는 환상에 우리가 기꺼이 굴복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물론 돈이 행복이라는 속물적인 등식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 대부분은 돈이 행복이라는 복합체의 80%의 구성성분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돈이 없으면 행복은 한 20%밖에 없다는 것에 동의한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80%를 먼저 채운 후 나머지 20%를 채우면 된다는 아주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사고, 그러니까 상당히 수량화된 사고를 하게 된다.
나름대로 먹물이라 자부하는 사람은 ‘부자아빠, 가난한 아빠’를 읽으면서 결국 게임에서 이기는 방법은 자본가가 되는 방법뿐이라고 주장한다. 그래야 자본의 룰에서 벗어나 편안한 은퇴생활을 할 수 있다고 외친다. 그러나 그 책의 숨은 전제 자체가 노동의 소외라는 것을 읽지 않는다. 우리는 자본가가 되기 위하여 할 수 없이 일해야 하는 것이다. 그 외에 노동의 의미는 어디론가 증발되어 버리고 없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물어보아야 한다. 과연 그 속삭임의 진리치는 T인가? 자본가가 되기 위하여, 혹은 10억을 모으기 위하여 투자하는 우리의 시간과 노동, 혹은 다시 말해 우리의 삶의 의미는 어디서 찾아야 하나? 자본이 약속한 “유예된 행복”은 유예된 시간이 오면 지복으로 우리를 위무해 줄 수 있나?
데블즈 애드버킷에서 알 파치노는 대가가 무엇이냐고 묻는 키아누 리브스에게 답한다. 모든 감각적인 만족, 죄의식 없는 쾌락, 법정에서의 한 없는 성취감. 그러나 우리의 키아누 리브스는 이 영화에서도 빨간 약(총알을 머리에 쏜다)을 집는다.
우리 인간이라는 족속은 어떤 경우에도 본질을 외면한 행복에서 진정한 충족을 느낄 수 없는 종이기 때문이다. 필론의 돼지가 행복할 수 있는 이유는 그가 돼지이기 때문이지 인간이기 때문은 아니다. 이문열은 결국 ‘행복’을 위해 돼지가 되라고 설파하는 것이다. 사이퍼가 택한 행복은 인간의 행복이 아니라 ‘건전지의 행복’임을 알기 때문에 독자들은 누구나 네오가 빨간약을 택할 것임을 예상한다. 이문열은 예외겠지만.
감각적인 만족으로는 “마음 속의 가시”를 잠시 마취시켜 둘 수는 있어도 영구히 빼낼 수는 없다. 감각적인 만족으로 행복할 수 있다는 생각은 일종의 허위의식이다. 자본이 끊임없이 우리에게 주입시키는 환상이다. 우리의 삶은 우리가 진정한 자기 자신이 되기 전까지는 끊임없는 불안감(마음의 가시)을 통해 우리를 일깨운다. 자본이 주입한 기표로서 우리는 만족할 수가 없다. 사회가 개인에게 주입한 의미로서 우리는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없다. 왜냐하면 삶의 의미는 스스로 찾아야만 하는 개별적인 과제이기 때문이다. 자본이 주입한 삶의 의미는 실제로는 환상의 덩어리, 의미 없음의 덩어리에 불과하다. 그걸 느끼는 순간 로캉텡([구토]의 주인공)처럼 구토를 느낄 수도 있고 네오처럼 끝없이 잠 못들 수도 있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삶에서 의미를 창조하도록 규정된 존재다. 자신의 노동을 통해서, 자신과의 관계를 통해서, 그리고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매 순간 의미를 창조 할 때 우리는 비로소 자신의 삶을 사는 것이다.
사이퍼가 먹는 즙이 줄줄 흐르는 스테이크보다 느브갓네살호의 꿀꿀이죽같은 밥이 더 맛있게 느껴질 수 있는 이유는 그 밥을 통해 네오는 의미를 찾았기 때문이다.
물론 모든 선택은 여전히 우리 각자의 자유의지에 달려있다. 환상을 택할 것인지 혹은 실존을 택할 것인지. 분명한 것은 실재라는 것이 주는 것은 언제나 비참하고 질박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속에는 자신의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기회, 그리고 삶의 신비가 존재한다. 그래서 네오는 기꺼이 빨간약을 택한다. 그리고 우리 내면의 실재도 빨간 약을 갈구하는 것이다.
삶이라는 것은 존재의 신비로 가득 찬 곳이다. 앨리스가 떨어진 토끼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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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y | 2008/08/07 18:15 | 트랙백 | 덧글(1)





오옷... 다음 글이 기대됩니다 ^^
이론...
'좌파의 매트릭스 읽기 1' 이 아니넹... -_- (이런 바부...)
암튼 잘 읽었습니다 ^^;
사실은 시리즈물로 할려고 했는데... 요즘 글 쓸 시간이 별로 없어서요...^^
매트릭스야 파고들면 파고들수록 할 이야기야 무궁무진합니다...ㅋ...
"만물이 서로 의존하고 있음을 깨닫는 순간, 우리는 더 넓은 마음을 갖고, 분노
와 미움 같은 파괴적인 감정에 덜 집착하게 된다. 타인에게 좋은 일이 일어나면
나 자신에게도 당장은 아니더라도 결과적으로는 이익이 돌아온다. 그것이 상호
의존의 원리다." 라고 달라이 라마는 말씀하셨지요.
결국 어떠한 선택을 하든 그것이 빨간 약일지라도..
타인에게 좋은 일을 하는 것이 삶의 정상적인 모습인 사회체제.... 그게 우리가 원하
는 것일겁니다. 달라이 라마가 원하는 사회의 모습도 그런 것일테고...그런데 자본주
의는 그런 사회의 시스템이 아닌듯합니다.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매트릭스 상당히 소름끼치는 영화로군요...특히나 건전지가 되어버린-동
일한 노동을 하는-인간들에게 전혀 동일하지 않은 전기자극-가치에 대한 지불-을 재공
하는 매트릭스의 프로그램들이 실로 소름끼치는 군요...역시나 현실이든 환상이든 규
정 당하는 삶을 살 수밖에 없는거란걸까요...ㅠㅠ
실로 우울한 하층 빳데리의 푸념입니다... T^T
실로 가난하고 무능한 좌파밧데리로서 님의 푸념에 동의하는
바입니다..ㅠ.ㅠ
하지만 언젠가 우리가 직렬연결되는 날이 오면 매트릭스가 아
니라 우리 자신을 위한 빛이 될 날이 올지도....ㅋ.....^^;;
왜 좌파야?
가난하고 무능하면 좌파야?
기준을 가르쳐 주세요
ㅎㅎㅎ 기준을 한번 찾아 보세요. 그리 어려운 질문은 아닐듯
한데요..
가난하다고 좌파는 아니고요..좌파중에는 가난한 사람이 많을
수는 있지요. 자발적으로 가난을 택한 사람도 있을테고요.
좌파중에는 무능한 사람도 있을테고 유능한 사람도 있을테지
요... (극)우파중에도 김용갑류와 조갑제류, 전여옥류가 있듯
이...
근데 님이 무능 유능을 가르는 기준은 아마도 화폐의 많고 적
음이겠죠? 매트릭스한테 안부전해주세요.
그럼 저게 우파로 보이오?
퍼갈께요~
넹...퍼가셔서 감사...^^
재미있네요.., 매트릭스가 자본주의 체제에 투영될 수도 있군요..
매트릭스는 (1편은) 제 생애 최고의 영화입니다만..
(워낙 대중적으로 히트해서 사실 이런영화하기 좀 거시기한 면도 있긴
해요.. 특히나 영화좀 봤다 하는 사람들한테 매트릭스가 베스트라고 하면
비웃음 받기 십상이죠..)
이런 이야기들을 하다보면.. 워쇼스키 형제가 생각한 것이 어디까지
인지가 궁금해집니다.. 그사람들은 어느정도까지 생각하고 영화를 만든
것일까..
실제로는 멋진 비쥬얼에 적당한 스토리를 얄팍하게 섞은 것인데 보는
사람들이 이런저런 해석을 끌어내고 있는 것은 아닐가..
특히나 이어지는 후속편들의 힘이 떨어지는 것을 보자면 그런생각이
더 들고요..
하지만 설사 그렇다고 해도 여전히 매트릭스는 좋습니다.
든것도 없으면서 겉으로만 난해한척 똥폼 잡는 일본 애니메이션들보다
겉으로는 화려한 블록버스터 같지만 생각할 거리가 많은 매트릭스가
더 좋거든요
단순히 얄팍한 영화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시리즈물을 넘어가면서 1편이
가졌던 깊이를 유지할 수 없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자신이 하고싶은 이야기를 플롯
에 담아낼 역량은 못되었던 것이죠. 그래서 매트릭스3부작은 걸작의 반열에 오르기
는 힘들고 수작정도가 될 수 있을것 같습니다. 하지만 1편만을 본다면 이건 걸작 맞
습니다.
이걸 무시하는 사람은 그안에 들어있는 텍스트를 읽어낼 능력이 없는 거라 봅니다.
게임에서 이기는 방법은 자본가가 되는 것 뿐...이라
평소에 수없이 하는 생각이죠.
근데 요즘 드는 생각이...그렇게 자본가가 되었을 때
그 자본가의 자본이 효력을 발생하기 위해서는
그 자본의 콩고물을 먹고 노동력을 제공하여
자본가에게 재화를 공급할 수 있는 노동자의 희생이 필요하죠.
(저는 자본의 콩고물(월급)대가로 노동을 하더라도 결국
노동은 희생을 강요할 수 밖에 없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그렇게 생각해봤을때 결국 자본가도 먹이사슬의 꼭대기에 있는
야수에 불과하며,
진정한 유토피아적 상황과는 거리가 멀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물론 이 논리도 요즘 생각하니 오류가 많은 듯 합니다.
물론입니다. 실제로 우리가 자본가가 되어도 우리는 사실 자본의 룰에 종속되어 있
는 겁니다. 다만 다른 종속자들보다는 더 많은 전기신호를 먹는 혜택을 누릴 뿐이죠.
그 혜택을 위하여 내 존재전체를 바칠 가치가 있느냐는 질문에 답하는 것이 먼저라
고 생각합니다.
현실은..욕망..ㅠ.ㅠ
간직하고 싶어 비밀창고로 가져갑니다~
속편도 써주세요!! ^^
공주님이 원하신다면 당연히 써야죠...^^
퍼가주셔서 감사...^^
공주님은 아닌데.. 긁적긁적..
참참!! 저는 애니 매트릭스가 넘넘 좋았어요!!!
각 에피소드들이 매트릭스 1편과 2, 3편을 이어주죠..
그래서 전 매트릭스 속편들도 다 재미있었답니다~~
물론 1편이 최고지만~ ^^
매트릭스는 1편에서 끝났어야 할 영화였지요.. 1편을 너무 인상적으로 봐서 2편을 극장에서 두 번이나 보아가면 3편을 기다렸건만.. 3편을 보고 나선 기억 속에서 지워 버리려 애썼습니다.. -_-a
사실 2편에서 이 두형제는 일을 너무 크레 벌린 것 같습니다. 2편에서 난발한 텍스트
와 주제가 3편에서 봉합되지않는 구조입니다. 만일 2편에서 벌여놓은 주제를 제대로
봉합했다면 정말 걸작이 될 수도 있었을 텐데... 하지만 솔직히 2편을 보면서 도대체
저걸 어떻게 수습하려하나하고 걱정했는데 역시 우려했던 결말을 만들어 내더군요.
1편은 Best...
2편은 범작...
3편은 Worst...
...pardon me for stupid englsih(com problem)
About capitalism, you metioned it only values something "productive." But it is a very vague definition because your activity will have price and this price does not mean anything but demand.
Therefore, if people desire freedom, they will volunteerly donate fore thier rebels. If they desire plastic surgery, they will spend their money on that!
You see capitalism is nothing but a mirror.....
most of time it will value materials like gold or car.
However, it can change anytime when people actually desire something else! even abstract ideas like freedom or environment!
Therefore, if you cannot change system in capitalsm based society... the odds are against you.
After all it is a mirror and if you see people who are seeking for blue pills... that's what they value and any revolution cannot force people to take red pills
읽으실지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답글 달겠습니다.
전 자본주의가 '화폐로 전환되는 활동'에 대해서만 생산적 활동이라는 가치를 부여한
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생산적활동만을 가치있다고 이야기한 것이 아니라.
그리고 님의 주장을 요약해 보면 '욕구결정론'쯤 되겠군요. 결국 자본주의는 인간의
욕구의 반영에 불과하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좌파의 관점에서 본다면 님의 주장은 지극히 관념론적입니다. 그럼 인간의 욕
구는 어떻게 해서 발생하느냐는 질문에는 어떻게 답하시렵니까? 욕구라는 것은 그
냥 존재하는 것이고 자기 멋대로 변하는 것이고 그 변화에 따라 사회도 변하는 것이
다?
이런 주장이 바로 관념론인 것입니다.
인간의 욕구 역시 자신의 경험의 체계로 인하여 발생하는 것이고 그 경험의 체계를
좌우하는 것은 그 사회의 존재양식-경제적 생산약식과 그로 인하여 발생하는 문화
적 체계-이라는 것이 좌파의 생각입니다.
난 저 차를 가지고 싶다...라는 욕구가 그냥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그 차를 만드는 노
동자의 노동, 그차의 마케팅 활동으로 인한 선전매체의 제작, 그리고 매스미디어의
활동으로 인하여 비로소 그런 욕구가 발생하게 된다는 겁니다.
한국이 아닌듯한데 관심있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과연 소유냐 존재냐.. 이문제군요^^
네, 에리히 프롬식으로 이야기하면 그런 셈입니다...그리고 프롬은 존재하라고 외치
죠...^^
선택이 자유의지에 달리긴 했지만, 제가 보기에 환
상이 아닌 실존을 택하기 위한 방법. 즉 건전지에
서 벗어날 방법은 그리 쉽지 않아보이는 군요. 매
트릭스를 깨닫는다고 벗어나는 건 아니니까요. 건
전지로부터 분리되어야 되잖아요. ^^;
우리가 진정으로 안다면 자연스럽게 행동이 뒤따르게 됩니다. 불안전하게 알기에, 혹
은 전혀모르면서 안다고 생각할 때 앎과 행위사이에 갭이 생기게 된다고 생각합니
다. 진정으로 안다는 것은 마치 자전거를 탈 줄 알듯이, 수영을 할 줄 알듯이 자신의
행위양식을 만들어 가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만일 우리가 매트릭스에 매인 존재라는
것을 진정으로 알게된다면 바로 그순간 '건전지로서의 접속을 끊는 행위'을 시작하
게 되지 않을까요?
감사히 읽고 갑니다 ^^ 좋은 글 이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