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와 보수의 이상한 동거

2004년 11월 19일 올렸던 글입니다.

예전에 오마이뉴스에 올렸던 글입니다. 사회복지에 관련된 게시판을 따로 만들어 컬럼을 올리고 싶습니다만, 현재 게시판 만들기가 안되는군요. 워낙에 한국사회가 이상한 곳이라서 이 나라의 사회복지는 아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입니다. 복지게시판을 만들면 재미있는(?) 이야기 올려보겠습니다.
 
 
- 에피소드 1
사회복지관련 교육을 마치고 여러 사회복지사와 시설원장들이 한담을 나누고 있었다. 민주당의 경선이 한참이던 시기였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정치이야기가 나왔다. 대구 경북지역의 사람들이 대부분이어서 그런지 민주당과 노무현씨에 대한 비판이 빗발쳤다.

한나라당에 대해서는 대단히 호의적인 반응이었고 조선일보에 대해서도 최고가는 신문이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부산에서 당선된 안기부출신 정치인에 대해서는 ‘영웅’이라는 말을 하는 시설원장도 있었다. 젊은 사회복지사들도 원장과 별다른 이견이 없었다. 사회복지사 한명이 완곡한 어조로 반론을 제시해 보았지만 곧 그 모임의 ‘주류’에 의해 '척결'되었고 주류의 성토는 계속되었다.


- 에피소드 2
아동복지 시설의 아이들이 모여서 텔레비전을 시청하고 있다. 텔레비전에서는 ‘러브하우스’라는 온정프로그램을 방영하고 있었다. 아이들은 옹기종기 모여 앉아 ‘불쌍한 사람들’의 집이 멋지게 바뀌는 것을 멍하니 보고 있었다. 몇몇 꼬마들이 저 사람들은 왜 이곳에는 오지 않는지 물어본다. 아무도 대답해 주는 사람은 없다.

위에서 열거한 두 가지 에피소드는 내가 직접 겪은 일들이다. 이 두 에피소드가 이 땅에서 사회복지가 처한 사회적 위치를 잘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해서 언급해 본 것이다.

나는 이 양자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원칙적으로 사회복지는 보수적일 수 없다. 사회복지는 사회에서 생산된 잉여가치를 다시 사회 제 계층, 그중에서도 특히 노동계급에게 재분배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부문이다. 다시 말해 잉여가치의 분배영역을 대표하는 부문인 것이다. 급변하는 사회지형과 사상 속에서 진보와 보수를 명확하게 규정하기는 어렵지만 조금 거칠게 선을 그어 보자면 생산부문을 강조한다면 보수적인 것이고 분배부문을 강조한다면 진보적인 입장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어떤 학자는 노동당과 보수당의 정책적인 차이는 단지 사회복지와 교육에 할당하는 예산 2퍼센트 차이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렇게 볼 때 사회복지부문은 본질적으로 보수적일 수 없다는 말이다. 그러나 주위를 둘러보면 사회복지계의 정치적 보수성, 그리고 일상생활에서의 보수성(?)을 너무나 쉽게 발견하게 된다.

현 정권의 가장 큰 성과가 사회복지예산의 확대라고 한다. 그런데 소위 대구·경북지역을 대표한다는 모 정당은 현 정부의 사회복지정책을 “사회주의적 발상”이라고 성토했다. 이게 웬 달밤에 원숭이 하품하는 소리인가 싶어서 한참을 읽어보니 정부개입과 선심정책이므로 ‘낡은 사회주의 방식’이라는 주장이었다. 쓴웃음조차 나오지 않았다.

우리나라의 사회복지정책의 후진성과 재정의 빈약함을 이곳에서 다시 언급할 필요조차 없으리라 믿는다. 그런데 이 조차 사회주의 방식이라 몰아세우는 정당을 사회복지종사자가 지지하는 것을 어떻게 이해하여야 하는가?

에피소드 2의 이야기를 해보자. 선진국에서는 일절 온정프로그램이 방영되지 않는다. 한 개인의 불행을 선정적으로 방영하여 ‘눈물을 짜내는 것’은 사회복지의 본질을 정면으로 위배하는 것일 뿐 아니라 사회복지에 대한 시민의 인식을 오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방송출연에 적합한 사람, 도움을 받기위해 기꺼이 프라이버시를 침해받을 준비가 된 사람에게만 베풀어지는 온정이 어떻게 사회복지의 가치와 부합될 수 있겠는가.

그러나 누구하나 거부감 없이 주말이면 온정프로그램을 보며 눈물을 흘리고 전화기를 들어 기부전화를 하기도 한다. 그리고 방송을 탈 수 없는 수많은 사람들은 텔레비전을 보며 아이러니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프로그램들이 사회복지영역에 대해 가지는 일반인의 인식을 대표하고 있고 강화하고 있다.

온정프로그램이 나쁘다 좋다라는 가치판단의 진술이 아니다. 한국에서의 사회복지는 아직도 온정과 시혜라는 전근대성을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에 위와 같은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는 말이다. 사회적인 강자가 약자에게 몇푼을 베푸는 것이 사회복지라면 정치적 진보성이 무슨 필요가 있겠는가? 불쌍한 사람 좀 돕는 것이 사회복지라면 사회복지예산을 확충한다고 해서 굳이 그 정당을 지지할 필요성이 없지 않겠는가?

사회복지라는 개념은 국민 개개인의 복지권이라는 개념과 분리하여 생각할 수가 없다. 국민 개개인이 정부에 대하여 복지권을 가지고 있고 정부는 이에 응하여 적절한 서비스를 제공할 의무를 가지는 것이다. 이러한 사회복지의 본질과 실천체계 어디에도 자선과 시혜가 자리 잡을 공간은 없다.

또 자선과 시혜가 아닌 이상 사회복지 종사자가 보수적일 수는 없는 것이다. 사회복지부문의 파이를 줄이는 것이 보수라는 것을 똑똑히 안다면 말이다. 이러한 기본적인 인식이 확고할 때 사회복지부문의 사회적 위치가 분명해 지고 실천체계의 모순을 해결할 수 있다. 또 전문직으로서의 올바른 철학과 윤리성도 확보하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복지의 전문성을 이야기한다. 특히 복지종사자들일 수록 그 전문성에 대해 더 강조점을 두게 된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전문성에 대하여 올바른 인식을 가지지 못하고 있다. 전문성은 철학과 윤리성을 바탕으로 전문기술이 축적될 때 형성되는 것이다. 기술적인 집적만을 가지고 전문직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질 수는 없다. 기술자와 전문가는 다른 범주에 속하는 용어인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을 돕는 과정의 부분적, 미시적 기술의 집합만으로 전문성을 담보할 수는 없다는 말이다. 사회전체를 조망하는 눈으로 사회복지가 어떤 위치에 서야하는 것인가를 보아야 한다. 그 전체를 조망하는 가운데 실천적 방법론이 발생하는 것이지 탈역사적, 몰사회적 실무지식의 집적이 올바른 사회복지실천을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전체사회 구조 속에서 사회복지를 본다면, 그리고 모순 없는 실천을 지향한다면 사회복지와 보수는 같은 배를 탈 수가 없다. 둘 중에 한 쪽은 배에서 내려야 한다. 지금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복지와 보수의 괴상망측한 동거가 어서 끝나기를 기대해 본다.

by 코지토 | 2008/04/27 13:41 | 공동체와 자본주의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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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明智光秀 at 2008/08/04 14:21
많은 걸 생각하고 갑니다.
Commented by 이불 at 2008/09/25 18:08
종부세 폐지는 좌파적 발상.
잘사는 사람과 못사는 사람을 모두 같이 만들려는 정책.
평준화로 돈 벌어 사회에 보탬이 되려는 사람들의 의지를 깎아먹는 좌파들의 최후의 발악.

뭐 그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어쩌다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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