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과 광기

하루에 하나 이상 꼭 글올리기로 마음 먹었지만, 도대체 쉽지가 않군요.

요즘은 시사를 생각할 여유도, 영화를 즐길 시간도 좀처럼 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언어는 줄어들고 사고는 굳어지는 느낌입니다.
이게 늙는다는 거겠지요.

오늘도 정신 없는 금요일을 보냈습니다.

요즘 까라마조프의 형제들을 읽고 있습니다.
얼마전 어떤 분들과 기독교, 개신교에 대한 토론을 나눈 적이 있는데 까라마조프의 형제들에 나오는 주제는 확실히 기독교라는 주제와 맞닿아 있습니다.

과연 기독교의 신, 기독교와 관련된 신앙은 우리를 구원할 수 있을까요?

까라마조프의 형제들에 나오는 조지마장로는 기독교, 혹은 러시아정교야말로 인간을 구원할 유일한 길이라는 것을 굳게 믿고 죽어갑니다. 그러나 그의 사상은 19세기의 그것이라고 해도 지나치게 단순합니다. 성경의 감독적인 구절만을 읽어줘도 러시아의 순박한 민중들은 하나님을 믿고 따를 것이고 자기 자신들을 무신론과 혁명으로부터 스스로를 구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아마도 이 믿음은 도스토예프스키의 그것이겠죠. 그러나 러시아는 결국 혁명의 물결로 넘어갑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어쩌면 자신의 광기는 결코 자신의 이성으로는 제어할 수 없는 것이라고 믿었을지도 모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광기는 결코 인간의 이성으로는 제어할 수 없는 것이고, 오로지 위에서 내려오는 신의 은총만으로만 치유할 수 있는 것이라고 보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렇게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

광기와 신앙은 같은 현상의 다른 발현이라고.

광기와 신앙은 명백한 현실을 놓치게 만듭니다. 광기와 신앙은 모두 인간의 뇌내망상을 통해 현실을 왜곡하게끔 강요합니다.

우리 모두는 조금씩이나마 현실을 왜곡하지 않냐구요?

네, 그렇습니다. 우리 모두는 어느 정도는 미쳐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현실에 적응할 수 있는 정도로 미쳐 있는 상황을 '정상'이라고 부르는 것이겠죠.

그러나 그 정도가 어느 지점을 넘어서게 될 때, 우리는 그것을 미쳤다고 지칭하겠죠.

광기와 신앙이 비슷한 정신작용의 다른 발현이라고 본다면 우리는 보다 더 구원에 다가설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구원에 대한 환상을 버림으로써 우리는 스스로를 더 잘 구원할 수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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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지토 | 2009/11/06 21:58 | 자투리들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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