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0월 21일
하루키문학의 성취와 한계2

2. 1Q84 1권 (무라카미 하루키, 양윤옥 역, 문학동네, 2009)
우선 1권까지 읽었습니다. 속도감 있게 잘 읽힙니다. 문학성, 문학적 성취는 제가 뭐라 말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니 제쳐두고, 소설적 재미만 얘기하면 '태엽감는 새'나 '해변의 카프카'보다 낫습니다. 이건 어느정도 자신있게 얘기할 수 있습니다. 하루키 작품 가운데 제가 제일로 쳐온 소설이 '세상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였고 이후 하루키가 이와 맞먹거나 뛰어넘는 작품을 쓰지 못하리라 여겼왔습니다만, 이번에 나온 1Q84와 비교하면 어느 작품이 더 나은지 우열을 가리기가 조금은 고민될 정돕니다. 일단 완결판까지 다 읽고 평가할 문제겠지만.
그렇지 않은 소설이 얼마나 있겠냐마는, 하루키 소설도 다양한 관점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특히 이번 1Q84도 마찬가진데, 제 경우엔 이 소설을 '일본 전후 시대에 관한 사회풍자'와 '주인공의 모험 이야기'가 직조된 소설로 즐기고 있습니다. 좀 무리한 얘기일수도 있지만, 유사종교집단 선구의 이야기는 천황제 하의 일본인, 일본 사회에 대한 알레고리로 읽힐 여지도 다소 있습니다. 이렇게 보면 주인공 덴고와는 기질상 대척점에서 서 있고 또 갈등을 겪었던 덴고의 부친이 'NHK' 라디오 요금 수금원이었다는 점도 재밌습니다. 하루키가 전후 일본사회, 일본시민들에 체질적인 불편함을 느끼고 있으며 이를 나름대로 작품에 반영하려고 한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다만 이것이 문학적 성취라는 기준에 볼 때 성공적인가 여부는 제가 판단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므로 넘깁니다.
이번 소설을 좌파성향이 강한 소설로 읽는 것도 또 다른 방식의 읽기입니다. 인간의 산물에 불과한 시스템에 도리어 상처받고 억압당하는 개인들, 이건 맑스주의의 '인간소외론'과 맞닻아 있는 문제의식입니다. 다만 여기서 말하는 인간소외는 맑스 자신이 '경제학-철학 수고'에서 말하는 그 소외의 개념과는 다르고, 오히려 정통(?) 맑스-레닌주의를 비판하며 젊은 맑스(young Marx)를 강조했던 유럽 신좌파의 인간소외론, 문화론적 소외이론과 친연성이 훨씬 더 강합니다. 따라서 이번 소설은 (적어도 1권에 한정해서 말한다면) 관점에 따라선 좀 좌빨스러운, 혹은 진보신당스러운 세계관에 일정 부분 통하는 면이 있는 작품으로 풀이할 여지도 있습니다.
----------- 이글은 아크로의 minue622님의 서평입니다. 원문주소는 http://theacro.com/zbxe/?mid=BulletinBoard2009&document_srl=57366
이 글에 대한 제 답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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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1Q84는 지금까지 하루키와는 또 다른 느낌입니다. 저 역시 지금까지 저작 중에서<하드보일드 원더랜드와 세계의 끝>이 최고가 아닐까 생각했는데 이작품을 읽으면서 생각을 재고하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정말 괜찮네요. 결국 <하드보일드>는 한 개인의 세계을 말하는 작품인데요, 다만 그 세계를 구성하는 모든 상징이 사회에서 세계의 끝(즉 그 개인의 의식의 세계)으로 유입되어 있다는 점에서 사회적 접점을 가질 수 있지만 실제 세계에서 체제의 모순과 접점을 가지지는 않죠. 주인공은 그저 으깨어지는 계란일 뿐입니다. 그는 상당히 쿨하게 계란으로서의 입장을 받아 들입니다. 맥주를 마시고 바다를 바라보면서 조용히 혼자만의 죽음에 대한 슬픔을 녹이는 것입니다.
하지만 1Q84는 다르죠. 어떻게보면 전공투와 광신의 알레고리도 있지만 그 광신의 이면에 있는 사회적 모순에 대한 비판도 놓지 않습니다.
다만 하루키의 소설에 제가 가지는 몇 가지 의구심은 그가 좋아하는 초현실적 구성이 사실은 현실의 모순을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입니다. 그는 예루살렘 연설문에서 우리가 시스템을 만들지만 그 시스템은 자신만의 생명을 가지고 우리를 죽인다고 말하죠.
그러나 그 시스템이 그 자신만의 생명을 가지는 과정에 대해서는 설명을 하지 않습니다. 시스템이 생명을 가지는 과정을 회의주의적으로 보자면, 그건 철저하게 개인과 사회의 역학관계에 대한 단계적 환원주의로 파악해야 합니다. 그게 리얼리즘적 태도겠죠. 그런데 그는 그러질 않습니다. "양"이라든가, "리틀 피플"이라든가, 혹은 환상적 힘을 가진 어떤 존재(태엽감는 새의 노보루)에게 그 책임을 전가합니다. 그런 운명을 타고 났고, 그런 어둠의 힘을 저절로 가지게 되었고, 혹은 어떤 기이한 현상을 통해 어둠의 힘을 가진 존재가 강림하는 것입니다. 이 부분이 저는 의문입니다.
물론 그 어둠의 존재에게 자신의 운명을 맡기느냐, 그에 맞서 싸우느냐는 것은 순전히 개인의 선택이며 그는 마땅히 그 힘에 부응하지 말 것을 요구합니다. 그 부분이 대단히 설득력있게 전개되고, 그것에 그의 매력이 놓여 있습니다. 그러나 한편 그 어둠의 힘을 묘사하는 부분에서 그는 너무 초자연적 힘으로 설명해 버립니다.
시스템은 결코 저 혼자 생명을 가지지 않습니다. 시스템을 만든 것도 우리며, 시스템에 생명을 부여한 것도 우리이며, 나아가 시스템으로 하여금 우리의 생명을 뺏도록 부추기는 것도 우리라는 것을 분명히 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하루키의 문체로...^^).
여기까지가 제가 생각하는 하루키의 성취와 한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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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대한 minue622님의 답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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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지토/ 예컨데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격을 말하는 하루키의 비판을 들어 보면, 일단 그 주장 자체는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기 어려운 정론이지만 거기에는 그 사건을 둘러싼 역사적/사회적 맥락이 거세되어 있지요.
적당한 표현인지는 모르겠지만, 사회과학적 인식이 결여되어 있어요. 그러다보니 하루키 소설에서 제기되는 진단과 해결책엔 구체성, 또는 현실성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할까, 좀 그런 면이 있죠. 예전에 제가 아크로에 올렸던 하루키의 인터뷰 내용을 보면 본인도 옴진리교 사건이라든지, 일본 학생운동의 과격화나 몰락의 배후에 놓인 일본사회의 구조적 문제점에 관해 나름의 판단을 갖고 있는 듯 한데 그게 실제 작품에서는 썩 만족스럽게 전달되진 않는 듯 합니다.
문학 기법의 차원해서 환상적인, 또는 초현실주의적인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작법 전략이야 작가의 개성이니 문제가 될 게 없겠지만, 정치적인 문제나 소재를 건드릴 때조차 이를 탈정치화시켜 버린다면 이건 좀 이상한거 아니냐라는 말이기도 합니다 (즉, 사실주의 기법을 굳이 채용하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사회적 현실을 생생하게 포착해 그려낼 수 있다는 애깁니다. 하루키식으로 표현하자면 진실을 픽션의 영역으로 끌어가서 이를 새롭게 조명하는 작업. 예를 들어 '난쏘공'의 경우가 그 좋은 사례).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학가로서의 하루키는 평가할 입장이 못되지만), 이야기꾼으로서 하루키는 그 재능이 두드러지는 바가 있습니다. 이번 작품은 그런 하루키의 장점이 몇 년만에 빛을 발한 경우 같아요.
적당한 표현인지는 모르겠지만, 사회과학적 인식이 결여되어 있어요. 그러다보니 하루키 소설에서 제기되는 진단과 해결책엔 구체성, 또는 현실성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할까, 좀 그런 면이 있죠. 예전에 제가 아크로에 올렸던 하루키의 인터뷰 내용을 보면 본인도 옴진리교 사건이라든지, 일본 학생운동의 과격화나 몰락의 배후에 놓인 일본사회의 구조적 문제점에 관해 나름의 판단을 갖고 있는 듯 한데 그게 실제 작품에서는 썩 만족스럽게 전달되진 않는 듯 합니다.
문학 기법의 차원해서 환상적인, 또는 초현실주의적인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작법 전략이야 작가의 개성이니 문제가 될 게 없겠지만, 정치적인 문제나 소재를 건드릴 때조차 이를 탈정치화시켜 버린다면 이건 좀 이상한거 아니냐라는 말이기도 합니다 (즉, 사실주의 기법을 굳이 채용하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사회적 현실을 생생하게 포착해 그려낼 수 있다는 애깁니다. 하루키식으로 표현하자면 진실을 픽션의 영역으로 끌어가서 이를 새롭게 조명하는 작업. 예를 들어 '난쏘공'의 경우가 그 좋은 사례).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학가로서의 하루키는 평가할 입장이 못되지만), 이야기꾼으로서 하루키는 그 재능이 두드러지는 바가 있습니다. 이번 작품은 그런 하루키의 장점이 몇 년만에 빛을 발한 경우 같아요.
# by | 2009/10/21 09:26 | 알렉산드리아도서관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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