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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지토의 세상분해하기 Season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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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운 나날 - 제임스 설터 0

70년대 미국을 담은 빛 바랜 풍경사진


벌랜드 부부 곁을 스쳐 가는 군상과 60년대에서 70년대까지 뉴욕의 중산층의 모습그리고 무엇보다도 정경들제임스 설터는 부분 부분이 빛나는 순간을 놓치지 않고 벌랜드 부부의 삶의 모습분위기정취를 그대로 전달한다화려하고 지적이고 가끔은 눈부시지만 결국은 허무한 당시의 느낌을 그 때 그 순간을 함께 살았던 느낌을 준다.


리처드 포드는 서문에서 제임스 설터가 이들평범한 부부고립되고 마멸되어가는 미국문화의 고립된 향유자들을-너그럽지 않은 눈으로 다룬다고 이야기 한다비리 벌랜드는 좋은 아빠지만 무능한 남자고이들 중 누구도 닮고 싶지 않은 전형이며 이들은 삶을 원하면 마치 한번 더 살 수 있다는 듯 가볍게 여기며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추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분명 좋은 사람들이지만 말하자면 깊이가 없다는 말이다.


글쎄소설은 독자의 것이니 누구나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것인데나는 제임스 설터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리처드 포드가 언급한 부분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마멸되어가는 미국 중산층 문화의 고립된 향유자로 이들을 그리고자 한 것도 아니고 삶의 진정 중요한 문제를 추구하지 않는다고 이들을 비판 하려 한 것도 아니다마찬가지로 이들이 심지어 서로를 사랑하고그리고 마지막 까지도 서로를 존중하므로 우리-이 책을 읽는 미국독자들-누구도 이들보다 우월하지 않다는 것을 말하려 함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제임스 설터가 말하고자 한 것은 60년대에서 70년대 후반까지 뉴욕 중산층 지식인을 휘감았던 열기시대정신을 그 안에서 살아가는 한 부부의 구체적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고 싶었던 거 아닐까? 그래서 네드라의 모델이 되었던 여자는 자신의 묘비명에 소설의 한 구절을 새기고 싶다고 말한다. 그녀를 비난하고 비판한 글로 읽지 않았기에.


비리 벌랜드는 건축가지만 자기가 원하는 만큼의 명성도혹은 네드라 벌랜드가 원하는 만큼의 금전적 성공도 얻지 못한다물론 풍요로왔고 뭐든지 넘치게 많았던 시대, "좋았던 시절"의 중산층이니 충분히 많은 돈을 벌었건만 비리는 스스로리를 좋은 아빠지만 무능하다고 생각하고 네드라는 비리가 절대로 부자가 될 수 없을 거라고 말한다. 비리는 스스로에게 가혹하고 네드라는 비리에게 가혹하다. 리처드 포드는 비리의 문제점 중 하나가 훌륭한 건축가가 되기를 원하지 않고 명성을 얻기 바라는 것이라 말한다. 부당한 것을 원한 것처럼. 포드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이런 거다. 명성보다는 실력과 창의력을 가지기를 원하고 명성은 뒤따라 오는 것인데 비리는 반대로 생각했다고. 그 사실을 비리가 몰랐을까? 


한명의 프로페셔널한 지업인로서 자신의 직업군에서 명성을 얻는 것을 바라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비리는 가우디를꿈꾸는 사람인데 그만한 재능이 없음에 절망한다하지만 그는 항상 재밌는 이야기를 만들고 책을 만들고 인형극를 하며 자신의 재능을자신의 창의력을지성을음악적 교양을 드러낸다심지어 말년에는 깨닫는다자신이 재능과 지성을 가지고 있으며 이상주의와 의리인간답기 위한 가치들을 들고 헤매던 일들바로 그 기억 때문에 그는 유지되고 깨어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그리고 문제는 그가 그런 자신을 똑똑히 보지 못했고 그게 문제라는 것도(p. 389).


비리는 능력있는 건축가이자 교양있는 중산층이고 분명 평균 이상의 지성을 지닌 사람이지만 그 시대 모든 사람들처럼 무엇이 옳은지어떤 삶이 바른 것인지그리고 무엇보다도 네드라라는 불꽃처럼 자유로운 여인을 어떻게 해야 평생 곁에 둘 수 있는지를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소설의 그 누구도 네드라를 영원히 곁에 두지 못한다. 비리는 평범하고 다른 모든 남자들도 평범한 사람인데 네드라는 평범하지 않다는 말이다.


무엇보다도 네드라.

이 소설은 네드라를 축으로 해서 모든 캐릭터-비리 벌랜드를 포함해서아니 특히 비리야말로-가 주변을 공전한다네드라는 아름답고 신비롭다사치스러우면서 지적이고 영원한 자유를 원한다네드라와 비리의 처음 장면은 아름답다. 조랑말을 찾으며 강가의 저택에서 묘사되기 시작한 생활은 눈부셨고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인다다만캐서린은 말한다네드라는 세상에서 가장 이기적인 여자라고


사실 네드라는 너무나 이기적이라 스스로의 자유를 단 하나도 포기할 수 없다좋은 사람과는 사랑을 해야하고 비리가 지겨울 때는 지겹다고 말해야 한다변덕스러운 자신의 감정에 마지막까지 충실하다생각해보면 그녀가 바로 70년대의 미국이다.


어떤 미국이냐고이런 거다대마초를 피우고가끔은 더한 마약을 하면서 비틀즈와 클래식을 동시에 들으면서 발래와 연극과 영화를 즐기고 안톤 체홉을 읽다가도 인도의 스승 크리슈나무르티의 책을 읽는다어느날은 연극과 비의를 섞은 조오지 구르지예프(혹은 게오르규 구르지예프)스타일의 공연예술을 보고 그 연글의 배우들은 당연히 바가바드기타를 읽는다물질적 풍요속에서 허무를 느끼고 정신적 자유를 찾기 위해 마약과 동양의 해탈을 꿈꾸던 시대네드라가 바로 그 시대다.


첫 장에서 캐서린은 네드라가 이기적이라 하며 남편 피터가 네드라같은 여자와 결혼했어야 한다고 말한다피터는 화를 낸다하지만 4장에서 캐서린은 말한다네드라는 정말 불쌍한 여자라고불행하다고가정을 떠났으니까피터는 아니라면서그녀는 남자에게 의지하지 않는심지어 입센의 노라와 같은자유롭고 참다운 여자의 삶을 산다고 말한다이들이 대화가 네드라의 삶과 그녀를 바라보는 주변인의 시선을 압축하고 있다그리고 이번 대화에서도 피터는 화를 낸다.


축제가 끝나고 모든 것이 사라질 때 네드라는 죽고 사람들은 남는다네드라는 가을에 죽지만 비리는 봄이 되어서야 이탈리아에서 돌아왔다. 처음 그들이 정착했던 집터 강변에서 서서 그들이 함께했던 영원할 것 같던 오후를 회상한다. 눈부셨던 오후를 어둠이 가득한 강변에서 바라본다. 이 소설은 눈부신 오후에서 어두운 밤으로 내려 앉는다. 친구들은-특히 네드라는-떠났고 우리는 강변에 서 있다. 피안으로 떠난 네드라를 이쪽 강변에서 바라보듯.


나는 준비됐고언제나 준비가 되어 있었어마침내 준비가 되었다고.


자유롭던 시대는 막을 내렸다그 시대는 사라지고 파편들만 남았다.



이 평온한 시간이 안락한 공간이 죽음실제로 여기에 있는 모든 것들접시와 물건들조리 기구와 그릇들은 모든 부재하는 것의 삽화였다과거로부터 밀려온 조각들이고 사라져 버린 몸체의 파편들이었다.


제임스 설터가 그리고자 했던 것은 60년대와 70년대 초까지 미국을 떠돌던 공기부유하고 있는 자유의 파편들그리고 이미 사라져 버린 정신의 그림자가 떠돌고 있는 가운데 이들의 사랑도 스러졌다는 것을 묘사한다가족관계가 스러진 것이 아니라 한 시대와 함께 그들의 모든 것도 이미 사라져 버린 것들의 잔여물이 되었다고 말한다그 시대가 사라지고 있기에 그들은


거짓의 증거들 속에서 거짓을 살았다.


이 장면에서 비리는 딱 한번 네드라에게 화를 낸다그는 좋은 사람이지만 우유부단하다그가 가진 결점은 그것이다우유부단하기에 그가 가진 모든 좋은 것들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다그리고 마지막까지 강변에 서서 생각하게 된다이제야 준비가 되었다고너무나 늦게.



정취와 분위기그리고 빛과 풍광의 묘사가 서사를 에워싸서 새로운 내러티브를 전달한다는 걸 배운 소설이다하지만 생소한 표현예컨대 "강은 영국인처럼은처럼 찼다"고 말할 때 제임스 설터가 말하고자 한 것이 무엇일까?


번역이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었을 것 같다. 유려하고 멋진 번역있지만 중간중간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문장이 있었는데 원어가 궁금하기도 했다. 이 책은 박상미님이 번역했는데 <올댓이즈>는 김영준님에게 맡겼다두 책의 번역을 비교해 보는 것도 재미있는 공부가 될 거 같다. 


상미님의 말처럼 이 책 제목의 원어 느낌을 전달하기가 어렵다. Light years라고하면 광년이라는 거리 개념과 가벼운 연대라는 특이한 조어, 두 의미가 된다. 소설 분위기를 보면 빛 속에 떠도는 자유의 정취와 파편, 빛 살속에 먼지처럼 부유하는 가볍고 찰나 같은 우리의 삶을 의미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가벼운 나날들이라고 번역하면 그 모든 분위기가 다 증발하고 땅에 떨어진 먼지 조각 같은 이미지만 남는다. 번역의 한계라고 밖에. 


읽고 나서 오랜 여운이 남는다. 넘치는 에너지는 아니지만 묵직한 여운이 가슴에 오래 괸다. 가벼운 나날의 여운은 결코 가볍지 않다.


당신 인생의 이야기 2

 


이 소설은 2017년 개봉한 영화 “arrival” 의 원작으로 유명하다여기 실린 8개의 작품이 테드 창을 세계적인 SF 작가로 부상 시켰는데 의외로 전통적인 장르물로서의 SF는 거의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그보다는 오히려 테드 창이라는 걸출한 과학도의 사고실험을 문학적으로 표현한 작품집으로 보인다출판사가 사고실험의 향연이라 말한 이유가 확실하게 와 닿는다.

 

당신 인생의 이야기가 전통 SF에 가장 가까운 작품인데 이 작품도 기존 SF와는 사뭇 다른 양상으로 흘러 r간다. 외계인과 인류의 소통을 통해 주인공의 식이 외계인을 닮아가는 과정을 묘사한다. 

외계인의 우주선이 지구의 상공에 나타나 지상으로 내려오는 것을 가정해 보자인류는 어떻게 대응할까더구나 우리는 그들의 의도도 모르고 소통할 방법조차 없다무엇부터 해야 할까?


헐리우드블록버스터는 이 상황을 침략으로 표현하고 인류는 지구를 지키기(?)위해 이들과 치열한 전투를 하여 물리치는 갈래를 선택한다. 그런데 수백 수십 광년혹은 수만광년을 날아와 지구 군대와 피터치게 싸우는 외계인이라? 하드 SF 작가라면 코웃음 칠 설정 아닐까?


수백광년, 수천광년을 여행할 수 있는 존재들이 우리 인간과 비슷한 의식구조를 가지고 있을까이들의 자아구조와 욕구가 인간이 상상하는 범주 내에서 작동할까? 위대한 아써 C. 클라크는 <라마와의 랑데뷰>에서 그 같은 생각이 얼마나 빈곤한 상상력인지 보여준다시공을 초월하는 외계인은  인간이 상상하기 어려운 의식 구조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들은 우리와 다르고 그 다름의 정도는 우리 추정의 범위를 넘어 설 것이다.

SF  거장은 외계인에 대한 의견을 아래와 같이 피력한 바 있다.

 

“SF에서 가장 다루기 까다로운 주제는 외계인이다외계인이 얽힌 문제에서는 가장 단순할 해결책조차 상당히 심오해진다이때 진정한 난제는 외계인이 아닌 자아를 이해하는 일이다.

                                                                    그레그 베어

 

우리의 위대한 아써 C. 클라크부터 아이작 아씨모프에 이르기까지 누구도 테드 창과 비슷한 상상력을 보여주지 못했다.."외계인과의 조우라는 장르물에 새로운 길을 제시한 했다. 외계인의 의식체계를 연구하여 우리 인류의 직선적 시공 인식이 우리의 사유 방식과 언어 인지 방식때문일지도 모른다는 가설을 제시한다그레그 베어의 말처럼 외계인-인류와 다른 지적 의식체-과 비교하여 우리 자아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는 것이다.

 

이 작품의 외계인은 시공간의 인식방식이 인간과 다르다. 이들의 언어체계는 순차적으로 배열되지 않고 공간적으로 동시에 완성되는 형태다. 이들은 시간 축을 동시에 인식하고 그래서 의사 표현 역시 시간적 배열을 따르지 않고 동시에 표현한다. 테드 창은 양자역학의 시간개념과도 다른 개념이라 설명하는데 의도적으로 양자역학을 배제하고 '페르마 최단시간 원리'라는 보다 고전적인 방식이 더 많은 메타포를 담을 수 있다고 판단했단다(그러나 내 얕은 물리학 지식으로는 양자역학의 개념을 완전히 배제할 수 있는 것인지 의아하다).

 

양자역학의 관점에서 시공간이라는 개념은 모호하다우리가 선택하는 방식에 따라 시간의 갈래는 나뉘어 지고 그 선택의 순간에 미래는 결정된다. 그러나 결정하지 않은 미래도 다차원적으로 중첩되어 확률적으로 시공간에 중첩되어 있다.우리가 어떤 선택을 할 때 확률 파동함수가 붕괴되면서 그 선택이 하나의 "사실"로 결정된다.


유저에 의해 선택되지 않은 게임프로그램의 알고리즘을 가정해 보자모든 경우의 수는 프로그래밍 되어 있다게임 유저가 선택을 할 때 비로서 그 알고리즘은 유저가 체험할 수 있는 형태로 모니터에 투사된다양자역학 모델은 이와 유사하다모든 경우의 수는 이미 한 시공간 속에 중첩되어 존재하지만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는 순간 그 중 하나가 물질계혹은 현재라는 시공간으로 물현된다.


더 쉽게 비유해보자. 당신은 리니지라는 게임을 하는 유저다게임내에서 어떤 선택을 하든 그 결과는 이미 프로그래밍 되어 있다그러나 당신은 당신의 자유의지로 각 분기점마다 선택을 하고 그 선택의 순간에 게임의 경로가 결정된다선택하지 않은 결정들은 프로그래밍되어 있다 해도 당신의 현실로 체험되지 않는다(평행우주론이라는 양자역학의 또 다른 모델도 있다. 우리가 선택을 할 때마다 우주는 나뉘어 지고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모든 경우의 수가 무한한 우주의 차원으로 존재한다 가설이다).

 

게임개발자는-현실세계에서는 아마 신이라 불리는 존재일텐데-모든 게임의 경우의 수를 다 프로그래밍 했다고 해도 유저인 당신이 어떤 선택을 할지 알지 못한다그래서 당신은 자유의지를 가진 존재이고 인간의 운명은 결정론에 따라 정해진 길을 흘러가지 않는다그렇다양자역학은 인간의 자유의지를 옹호하는 이론이다.

 

<당신 인생의 이야기>이 와 유사해 보이지만 다른 시공간 모델을 상상한다 헵타포드라는 외계인의 지각은 모든 시간을 현재로 인지한다그러나 그 시간의 흐름은 이미 결정되어 있고 결과를 바꿀 선택의 여지는 없다앞서 이야기한 양자역학모델이 일종의 게임 프로그램이 수록된 CD같은 거라면 헵타포드가 인지하는 시간은 음악 CD를 플레이 하는 것과 비슷하다음악CD는 테이프처럼 순차적으로 접근하지 않고(테이프처럼 물리적으로 순차적으로만 접근하는 경우를시퀀셀 액세스라고 한다)필요한 정보에 바로 접근 할 수 있다(이를 보통은 랜덤 액세스라고 한다). 랜덤 액세스를 통해 CD의 어떤 부분에도 바로 접근하여 그 노래를 들을 수는 있다. 그러나 헵타포드는 좋아하는 CD를 무조건 처음부터 끝가지 듣는 팬처럼 충실하게 시간 순서에 따라 체험을 따라간다. 다음에 무슨 노래를 들을지 다 알고 있지만 순서를 바꿀 방법은 없다. 그냥 알지만 따라갈 뿐이다.

 

그 외계인과 소통하며 그들의 인식을 공유하는 주인공은 자신의 삶을 외계인과 같은 형태로 경험한다. 이 소설의 서술은 주인공의 이런 시공간적 체혐을 서술하는 것이다. 어떤 선택도 할 수 없는 자신의 전생애, 그 삶을 한 순간에 인지하고 차례 차례 현실로 경험하는 주인공. 그가 느끼는 삶은 어떤 느낌일까?


어쩌면 그리스비극의 주인공 같다. 그리스 비극의 주인공은 운명을 피할 수 없다. 운명을 피하려는 노력이 오히려 자신의 비극을 잉태하게 된다. 차이가 있다면 헵타포도도 주인공도 자신의 운명을 피하려 하지 않는다. 모든 것은 결정되어 있다. 존재는 그저 결정된 시간을 체험할 의무 밖에 없다. 주인공은 자신 삶의 비극을 인지하지만 담담히 살아갈 뿐이다. 어떻게 이런 상상이 가능할까?


책의 가장 앞에 나오는 이야기는 <바빌론의 탑>이다이 작품은 SF로서도 특이하다. SF의 서브 장르에 대체역사물이 있다역사가 어떤 이유로 다르게 흘러간다면(혹은 다르게 흘러간 평행우주가 있다면)어떤 일이 생길까하는 질문을 던지고 이에 대한 상상을 펼치는 SF그런데 테드 창은 한발 더 나아가 대체물리물(더 정확하게는 대체 천체물리물)을 상상해 본다.


익히 아는 물리적 법칙이 아니라 고대 히브리와 바빌론의 천체관에 따라 구성된 세계가 있다. 그 섹계 안에서 하늘 끝까지, 천공의 벽을 넘어 간다면 어떤 일이 생길까이 질문에 대한 재밌는 대답이 <바빌론의 탑>이다


이 작품은 <지옥은 신의 부재>와 비슷한 맥락에 놓인 작품이다. <지옥은 신의 부재>는 만일 고대 히브리 종교관이 모두 사실이라 가정하고 절대 신과 천사, 타락천사가 강림하는 세계에서 우리의 현대가 된다면 우리는 어떤 삶을 살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신을 두려워 할까? 숭배할까? 그럼에도 출애굽기의 히브리인처럼 신에 반항하는 사람들이 있을까? 욥처럼 신의 무의미한 징벌과 처벌에 반항하는 캐릭터가 욥기와 다른 사실적인 설정으로 풀어간다면 마땅히 거대한 비극으로 마무리되어야 하지 않을까? 이 엉뚱한 질문에 대한 답을 진지하게, 사적으로 그려가는 테드 창

런데 한편으로는 매우 장난스럽게 느껴진다도대체 어떻게 이런 상상을 이토록 진지하게 전개할 수 있을까하는 의미에서.


이 장난기는 우리 세대 최고의 이야기꾼 움베르토 에코와 닮아있다움베르토 에코 역시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환상적인 이야기를 들려준 적이 있다그 작품의 제목은 <바우돌리노>. 

<바우돌리노>는 중세 신학자들의 신앙과 미신이 진짜라면 그리고 그 세계에서 일단의 모험을 떠난다면 어떤 일을 겪을까하는 질문을 던지고 자신의 아이들에게 그 대답을 재미있게 들려준다. 중세 신학자들이 믿은 온 갖 신학적 상상물을 생생하게 그려내면서 그들이 진짜로 그 시대에 그런 일을 했다는 듯 시치미를 뚝 떼고.

 

이 선상에 서 있는 또 다른 작품은 <일흔 두 글자>이 작품은 정통“ 대체역사물이다전술했듯이 대체역사물은 우리들이 우리와 비슷한 환경의 평행우주혹은 평행 시공간에서 우리가 다른 식의 삶을 살았을 때를 상상해 보는 이야기다

이 작품은 고대 히브리의 신비주의 카발라와 중세의 신비주의 헤르메티카(혹은 연금술)를 결합하고 이 두 신비주의가 과학을 대체한 현대세계를 묘사한다.

이런 시도가 SF에서 신선한 것은 아니지만 이야기의 전개는 놀라울 정도로 새로웠다(혹은 테드 창 다웠다). 현대과학이 아닌 오컬트(헤르메티카)와 카발리즘을 가지고 인류 멸종이라는 생물학적 위기를 막고자 하는 과학자(혹은 마법사)들의 이야기이런 이야기가 가능할까? 테드 창 아니면 아무도 그런 이야기를 상상하지 못할 거 같다.

 

 <인류 과학의 진화>와 <외모 지상주의에 관한 소고 다큐멘터리>그리고 <이유>는 급격한 기술의 발달이 인류의 본질을 바꿀 때 일어나는 상황에 대한 상상이다.


미래학자 레이 커즈와일이나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는 과학의 발달이 인간의 생물학적 진화를 앞지르는 상황을 이 곧 닥치리라 믿는다. 테크놀로지가  인간의 생물학적 진화를 앞질러 인간을 진화를 가속할 때, 또는 생물학적 존재 양태를 바꿀 때 우리는 그때도 인류로 존재할 수 있는 것일까?


<이유>는 뇌의 뉴런의 연결을 극단적으로 증진시키는 호르몬 K로 인간의 지적 능력이 인간의 한계를 넘어 설 때에 대한 이야기다주인공은 자신의 능력으로 궁극적인 정신적 확장을 추구하고 대적캐릭터는 초인적 인지 능력을 인류를 구원(혹은 구원이라는 이름의 지배)를 추구한다. 이 두사람이 왜 갈등해야 하는지 알 수 없지만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이들은 둘 중 하나를 파멸시켜야 한다는 필연적 결론에 도달한다. 그리고 주인공은 적대자의 농간에 빠져 붕괴된다.이 과정에서도 테드 창은 인간의 마음이 생화학적으로 프로그래밍 된 것 컴퓨터와 유사하다는 인지과학 이론을 도입해 리얼리티를 강화한다.우리의 마음도 생화학적으로 프로그래밍이라는 상상은 또 다른 상상의 공간을 만든다.


<인류과학의 진화>에서는 바이오 테크와 컴퓨터 공학을 결합하여 신적인 능력을 가진 인간이 등장한다. 이들은 메타 인간이라 불리는데 일반적인 인류는 이들의 보살핌을 받으며 여전히 생물학적 인간의 영역에 머물며 자신의 문화를 이어간다. 사회가 이렇게 양분될 때 보통 인간의 삶은 어떤 것일까?

짦은 소품이지만 그 함의가 던지는 무게는 막중하다과학이 만든 인간을 넘어선 인간그들은 자신보다 열등한 인류인 현생인류를 여전히 인간으로서 대접할까유발 하라리는 이들과 현생인류와의 격차는 현생인류와 네안데르탈인과의 격차보다 훨씬 클 것이라 예견한다.이 작품은 정확히 그런 상황을 그리고 있다.

 

<외모 지상주의에 관한 소고 다큐멘터리>는 그보다는 더 마이크로한 상황을 상상한다. 이 작품은 인간이 가지는 외모에 대한 매력, 특히 이성적 매력이 무엇인지 질문을 던진다. <탈코르셋캠페인이 유행하는 세태와 비교해 보면 이 질문의 가지는 의미가 더 크게 보인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외모에 많은 의미를 부여하는데 이는 고대인들은 인체의 아름다움에는 우주적 질서가 숨겨져 있다고 믿었던 착각과 크게 다르지 않다그러나 진화심리학은 인간의 심미안특히 이성간의 매력을 유도하는 외모에 대한 감수성은 더 이상 인문학의 영역이 아니라 주장한다.


진화론과 진화심리학은 인간의 외모에 대한 감각은 유전자 보존을 위한 기제로서 작동하는 비합리적 욕구라고 설명한다아름다운 여자라는 말은 아이를 잘 낳아 남성의 유전자를 보존할 것 같은 특성을 가지고 있어서 남성의 본능적 이끌림을 유도하는 여자라는 언술과 다르지 않다는 말이다(다시 말하지만 진화심리학의 관점이다).


그렇다면 20만년전에 설계된 이같은 심미안을 아직도 유지하는 것이 합리적일까그런 심미안을 이용한 섹슈얼리티의 상품화가 정당한 것일까만일 그게 정당하고 합리적인 것이 아니라 생각한다면 유전자적으로 타고난 이성에 대한 본능적 이끌림을 제거하는 나노칩을 이용하여 이를 제어한다면 어떨까? 그것은 인간의 본성을 저버린 것일까아니면 원시시대에 기원한 비합리적 욕구를 제어하여 인류의 성숙을 이끌어 내는 걸까? 그렇다면 그렇게 마이크로 칩에 의존한 성숙이 진정한 성숙이라 할 수 있을까? 

이 작품은 그 질문에 대한 여러 관점을 제시한다간단한 질문같지만 인간의 존재에 대한 의문까지 이어져 있는 질문임을 여러 화자의 입을 통해 설명한다.

 

테드 창은 독특한 SF 작가다아서 C. 클라크나 아이작 아씨모프위에 전술한 그레그 베어같은 하드 SF작가와도 결이 다르고 로즈 젤라즈니 같은 뉴웨이브 혹은 인문학적 SF와도 확연히 다르다과학적 엄밀성을 따질 때는 중력의 임무의 할 클라멘트 못지 않고 판타지 성향은 <다아시경의 모험>을 쓴 랜달 개릿을 가뿐하게 넘어선다.

그러나 그까 진지하게 던지는 질문모든 작품을 관통하며 놓지 않는 한 가지 주제인간은 무엇인가우리는 무엇이며 무엇이 될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질문은 다른 어떤 문학작품과 비교 해도 손색이 없다무엇보다도 그는 우리 시대 최고의 이야기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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