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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지토의 세상분해하기 Season 2

포토로그



우리의 밤이 시작되는 곳 – 2022년의 백귀야행 0


 

벛꽃이 만발한 밤거리와 죽음


장례식이 끝나면 재호는 마리를 뒷자리에 태우고 서대문과 종로의 밤을 질주합니다밤은 찬란하고 장례식장에서 피기 시작한 벚꽃은 소설 내내 흐드러진 채 흩날리죠이상한 조합이죠장례식과 죽음그리고 벚꽃과 맥도날드그러나 어쩌면 우리가 사는 이 시대가 바로 그러할지도 몰라요누군가가 죽은 날누군가는 환하게 빛나는 불빛을 24시간 뿌려대는 맥도날드에서 햄버거를 먹잖아요죽음조차 상조회사의 수요이듯 24시간 불야성으로 반짝거리는 맥도날드는 2022년 서울의 자본주의 숙성도를 드러내는 상징이 될만하지 않나요?

 

장례식 아르바이트를 하는 재호와 마리는 왜 맥도날드 밤새 오토바이를 타고 맥도날드 순례를 떠나는 것일까요오랜 기간 입사 원서를 내고 탈락을 거듭한 그들에게 맥도날드는 어떤 의미로 다가오길래?

죽음과 내내 마주하는 등장인물들 누구도 심각한 표정으로 슬퍼하지 않아요우울하다고 이야기할 때도 뭔가 촌극같은 느낌이 들죠심지어 아죽사(아름다운 죽음을 준비하는 사람들회원들은 유니폼으로 빨간색 양복을 입고 장례식에 참석합니다히로시가 만들어준 빨간 양복은 고베에서는 루팡 3세를 의미한다고 하거든요이렇게 이 소설은 죽음과 벚꽃장례식과 빨간양복그리고 고베의 지진과 루팡 3세를 연결합니다이 낯선 조합이 작가가 말하고 싶은 우리 시대의 진실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루팡 3그리고 헤이세이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


이야기를 조금 더 확장해 볼게요이 작품을 읽는 내내 떠오르는 작품이 하나 있었어요루팡3세를 제작한 지브리의 94년도 작품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 (이하 폼포코)입니다자본주의가 한창 자리를 잡아가던 60년대의 일본을 배경으로 하는 루팡3세는 모든 면에서 기존의 모럴과 법을 무시하는 피카레스크였죠그러나 30여년이 흐른 폼포코에서 주인공 너구리들은 고도자본주의 시대의 인간에게 철저하게 패배하는 것으로 그려지죠이건 거의 잔혹동화 같아요(지브리의 진혹동화!)


너구리가 목숨을 걸고 펼친 마지막 항전백귀야행

 

인간에게 빼앗긴 터전을 되찾기 위한 마지막 대작전을 펼치는데 그것이 바로 백귀야행이었어요번역으로는 요괴대작전이라고 나오는데인간들에게 천지자연의 무서움을 보여주기 위해 너구리들이 온 힘을 다해 요술과 변신술을 부려 온갖 일본 신화와 동화속의 요괴들을 불러내어 밤거리를 배회하는 모습을 보여주자는 것이죠그러면 인간들은 두려움을 느끼고 자연을 파괴하는 신도시 개발을 포기하지 않을까 생각한 거죠. 자본주의를 너무 우습게 본 겁니다너구리가 목숨까지 버려가며 만든 이 어마어마한 이벤트를 한 놀이공원에서 자신들의 광고였다고 선전하니까요결국 너구리들은 인간으로 변신한 채 본성을 버리고 자본주의에 순응하든가 아니면 인간이 버린 쓰레기를 먹는 처지로 전락하게 됩니다맞아요이게 바로 고도자본주의죠순응하거나 전락하거나.

재호와 마리가 서대문에서 맥도날드를 먹으며 야행할 때그리고 그들 주변의 등장인물이 술에 취해 떠들고 부대낄 때떠오른 것은 너구리들의 백귀여행이었어요현실적인 시공간을 디테일하게 그렸지만 판타지의 이공간이 느껴진 것은 그래서일까요자본주의에 순응하지 못한 군상들이 펼치고 있는 하릴 없는 저항의 몸짓그러나 이미 그들은 알고 있죠이 모든 저항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작품에 자주 나오는 해머링 맨 (출처 게티 이미지)

 

그래서 재호와 은혁이 정규직이 되길 염원하던 광화문의 해머링맨이 의미하는 것은 노동의 숭고함이랍니다노동이 가장 가치 없는 이 시대에 소원을 비는 대상이 해머링맨이라니요그래요어차피 순응해야 하는 살아갈 수 있다면 재호와 마리가 잘릴 위험이라도 느끼지 않는 것이 소원이 될 수 있는 거죠덕분일까요마침내 소원을 이루어서 상조회사에 합격합니다첫 장면에서 아르바이트하러 향하던 장례식장재호는 마리를 태우고 마지막 씬에서 또 스쿠터를 그쪽으로 돌립니다. 44년동안 맥도날드에서 일한 어느 할머니처럼 일하고 장례식장에서 일하고 싶다면서그 삶은 어떤 것일까요재호와 마리에게 삶은 죽음과 멀지 않아요그래서 누구도 심각한 표정을 짓지 않는 이 소설이 잔혹동화처럼 보입니다맞아요우리는 그런 시대에 살고 있어요소원을 빈다는 것이 해머링맨 앞에서 평생 일이라도 할 수 있게 해달라고 말하는 시대그래도 응원하고 싶네요재호와 마리의 삶을부디 상조회사에서 44년간 일하면서 장례식 인생을 만들 수 있기를그래서 벚꽃이 흐드러진 그곳에서 무사히 늙어 갈 수 있기를.

교보문고에 갈 일이 있으면 해머링 맨 앞에서 재호와 마리의 소원이 이뤄지기를 빌어 볼까 합니다.


가벼운 나날 - 제임스 설터 0

70년대 미국을 담은 빛 바랜 풍경사진


벌랜드 부부 곁을 스쳐 가는 군상과 60년대에서 70년대까지 뉴욕의 중산층의 모습그리고 무엇보다도 정경들제임스 설터는 부분 부분이 빛나는 순간을 놓치지 않고 벌랜드 부부의 삶의 모습분위기정취를 그대로 전달한다화려하고 지적이고 가끔은 눈부시지만 결국은 허무한 당시의 느낌을 그 때 그 순간을 함께 살았던 느낌을 준다.


리처드 포드는 서문에서 제임스 설터가 이들평범한 부부고립되고 마멸되어가는 미국문화의 고립된 향유자들을-너그럽지 않은 눈으로 다룬다고 이야기 한다비리 벌랜드는 좋은 아빠지만 무능한 남자고이들 중 누구도 닮고 싶지 않은 전형이며 이들은 삶을 원하면 마치 한번 더 살 수 있다는 듯 가볍게 여기며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추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분명 좋은 사람들이지만 말하자면 깊이가 없다는 말이다.


글쎄소설은 독자의 것이니 누구나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것인데나는 제임스 설터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리처드 포드가 언급한 부분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마멸되어가는 미국 중산층 문화의 고립된 향유자로 이들을 그리고자 한 것도 아니고 삶의 진정 중요한 문제를 추구하지 않는다고 이들을 비판 하려 한 것도 아니다마찬가지로 이들이 심지어 서로를 사랑하고그리고 마지막 까지도 서로를 존중하므로 우리-이 책을 읽는 미국독자들-누구도 이들보다 우월하지 않다는 것을 말하려 함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제임스 설터가 말하고자 한 것은 60년대에서 70년대 후반까지 뉴욕 중산층 지식인을 휘감았던 열기시대정신을 그 안에서 살아가는 한 부부의 구체적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고 싶었던 거 아닐까? 그래서 네드라의 모델이 되었던 여자는 자신의 묘비명에 소설의 한 구절을 새기고 싶다고 말한다. 그녀를 비난하고 비판한 글로 읽지 않았기에.


비리 벌랜드는 건축가지만 자기가 원하는 만큼의 명성도혹은 네드라 벌랜드가 원하는 만큼의 금전적 성공도 얻지 못한다물론 풍요로왔고 뭐든지 넘치게 많았던 시대, "좋았던 시절"의 중산층이니 충분히 많은 돈을 벌었건만 비리는 스스로리를 좋은 아빠지만 무능하다고 생각하고 네드라는 비리가 절대로 부자가 될 수 없을 거라고 말한다. 비리는 스스로에게 가혹하고 네드라는 비리에게 가혹하다. 리처드 포드는 비리의 문제점 중 하나가 훌륭한 건축가가 되기를 원하지 않고 명성을 얻기 바라는 것이라 말한다. 부당한 것을 원한 것처럼. 포드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이런 거다. 명성보다는 실력과 창의력을 가지기를 원하고 명성은 뒤따라 오는 것인데 비리는 반대로 생각했다고. 그 사실을 비리가 몰랐을까? 


한명의 프로페셔널한 지업인로서 자신의 직업군에서 명성을 얻는 것을 바라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비리는 가우디를꿈꾸는 사람인데 그만한 재능이 없음에 절망한다하지만 그는 항상 재밌는 이야기를 만들고 책을 만들고 인형극를 하며 자신의 재능을자신의 창의력을지성을음악적 교양을 드러낸다심지어 말년에는 깨닫는다자신이 재능과 지성을 가지고 있으며 이상주의와 의리인간답기 위한 가치들을 들고 헤매던 일들바로 그 기억 때문에 그는 유지되고 깨어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그리고 문제는 그가 그런 자신을 똑똑히 보지 못했고 그게 문제라는 것도(p. 389).


비리는 능력있는 건축가이자 교양있는 중산층이고 분명 평균 이상의 지성을 지닌 사람이지만 그 시대 모든 사람들처럼 무엇이 옳은지어떤 삶이 바른 것인지그리고 무엇보다도 네드라라는 불꽃처럼 자유로운 여인을 어떻게 해야 평생 곁에 둘 수 있는지를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소설의 그 누구도 네드라를 영원히 곁에 두지 못한다. 비리는 평범하고 다른 모든 남자들도 평범한 사람인데 네드라는 평범하지 않다는 말이다.


무엇보다도 네드라.

이 소설은 네드라를 축으로 해서 모든 캐릭터-비리 벌랜드를 포함해서아니 특히 비리야말로-가 주변을 공전한다네드라는 아름답고 신비롭다사치스러우면서 지적이고 영원한 자유를 원한다네드라와 비리의 처음 장면은 아름답다. 조랑말을 찾으며 강가의 저택에서 묘사되기 시작한 생활은 눈부셨고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인다다만캐서린은 말한다네드라는 세상에서 가장 이기적인 여자라고


사실 네드라는 너무나 이기적이라 스스로의 자유를 단 하나도 포기할 수 없다좋은 사람과는 사랑을 해야하고 비리가 지겨울 때는 지겹다고 말해야 한다변덕스러운 자신의 감정에 마지막까지 충실하다생각해보면 그녀가 바로 70년대의 미국이다.


어떤 미국이냐고이런 거다대마초를 피우고가끔은 더한 마약을 하면서 비틀즈와 클래식을 동시에 들으면서 발래와 연극과 영화를 즐기고 안톤 체홉을 읽다가도 인도의 스승 크리슈나무르티의 책을 읽는다어느날은 연극과 비의를 섞은 조오지 구르지예프(혹은 게오르규 구르지예프)스타일의 공연예술을 보고 그 연글의 배우들은 당연히 바가바드기타를 읽는다물질적 풍요속에서 허무를 느끼고 정신적 자유를 찾기 위해 마약과 동양의 해탈을 꿈꾸던 시대네드라가 바로 그 시대다.


첫 장에서 캐서린은 네드라가 이기적이라 하며 남편 피터가 네드라같은 여자와 결혼했어야 한다고 말한다피터는 화를 낸다하지만 4장에서 캐서린은 말한다네드라는 정말 불쌍한 여자라고불행하다고가정을 떠났으니까피터는 아니라면서그녀는 남자에게 의지하지 않는심지어 입센의 노라와 같은자유롭고 참다운 여자의 삶을 산다고 말한다이들이 대화가 네드라의 삶과 그녀를 바라보는 주변인의 시선을 압축하고 있다그리고 이번 대화에서도 피터는 화를 낸다.


축제가 끝나고 모든 것이 사라질 때 네드라는 죽고 사람들은 남는다네드라는 가을에 죽지만 비리는 봄이 되어서야 이탈리아에서 돌아왔다. 처음 그들이 정착했던 집터 강변에서 서서 그들이 함께했던 영원할 것 같던 오후를 회상한다. 눈부셨던 오후를 어둠이 가득한 강변에서 바라본다. 이 소설은 눈부신 오후에서 어두운 밤으로 내려 앉는다. 친구들은-특히 네드라는-떠났고 우리는 강변에 서 있다. 피안으로 떠난 네드라를 이쪽 강변에서 바라보듯.


나는 준비됐고언제나 준비가 되어 있었어마침내 준비가 되었다고.


자유롭던 시대는 막을 내렸다그 시대는 사라지고 파편들만 남았다.



이 평온한 시간이 안락한 공간이 죽음실제로 여기에 있는 모든 것들접시와 물건들조리 기구와 그릇들은 모든 부재하는 것의 삽화였다과거로부터 밀려온 조각들이고 사라져 버린 몸체의 파편들이었다.


제임스 설터가 그리고자 했던 것은 60년대와 70년대 초까지 미국을 떠돌던 공기부유하고 있는 자유의 파편들그리고 이미 사라져 버린 정신의 그림자가 떠돌고 있는 가운데 이들의 사랑도 스러졌다는 것을 묘사한다가족관계가 스러진 것이 아니라 한 시대와 함께 그들의 모든 것도 이미 사라져 버린 것들의 잔여물이 되었다고 말한다그 시대가 사라지고 있기에 그들은


거짓의 증거들 속에서 거짓을 살았다.


이 장면에서 비리는 딱 한번 네드라에게 화를 낸다그는 좋은 사람이지만 우유부단하다그가 가진 결점은 그것이다우유부단하기에 그가 가진 모든 좋은 것들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다그리고 마지막까지 강변에 서서 생각하게 된다이제야 준비가 되었다고너무나 늦게.



정취와 분위기그리고 빛과 풍광의 묘사가 서사를 에워싸서 새로운 내러티브를 전달한다는 걸 배운 소설이다하지만 생소한 표현예컨대 "강은 영국인처럼은처럼 찼다"고 말할 때 제임스 설터가 말하고자 한 것이 무엇일까?


번역이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었을 것 같다. 유려하고 멋진 번역있지만 중간중간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문장이 있었는데 원어가 궁금하기도 했다. 이 책은 박상미님이 번역했는데 <올댓이즈>는 김영준님에게 맡겼다두 책의 번역을 비교해 보는 것도 재미있는 공부가 될 거 같다. 


상미님의 말처럼 이 책 제목의 원어 느낌을 전달하기가 어렵다. Light years라고하면 광년이라는 거리 개념과 가벼운 연대라는 특이한 조어, 두 의미가 된다. 소설 분위기를 보면 빛 속에 떠도는 자유의 정취와 파편, 빛 살속에 먼지처럼 부유하는 가볍고 찰나 같은 우리의 삶을 의미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가벼운 나날들이라고 번역하면 그 모든 분위기가 다 증발하고 땅에 떨어진 먼지 조각 같은 이미지만 남는다. 번역의 한계라고 밖에. 


읽고 나서 오랜 여운이 남는다. 넘치는 에너지는 아니지만 묵직한 여운이 가슴에 오래 괸다. 가벼운 나날의 여운은 결코 가볍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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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분해할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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